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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으로 돌아 가시도록 [이충호 변호사]
AI로 고소장 쓸 때 주의할 점 — 편리함 뒤에 도사린 위험 본문

챗GPT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고소장을 받아 경찰서에 제출하는 일이 낯설지 않아졌습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사건이 단순하다고 생각되거나, 일단 고소부터 접수해두고 싶을 때 AI는 빠르고 그럴듯한 초안을 내어줍니다.
그런데 법조계 현장에서는 AI가 작성한 고소장을 그대로 제출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완성도 있어 보이지만, 뜯어보면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하고 있거나, 사실관계가 미묘하게 과장되어 있거나, 적용 법조문이 엉뚱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AI를 활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가장 큰 위험 — 없는 판례를 만들어낸다
생성형 AI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법령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생성하는 현상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미국 뉴욕의 한 변호사가 AI를 활용해 소송 서면을 작성했는데, 인용한 판례 7건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법원은 해당 변호사와 로펌에 제재금을 부과했습니다. 영국 고등법원도 AI가 생성한 허위 판례를 변론에 활용하는 변호인은 법정모독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공식 경고를 발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내에서도 변호사가 AI가 생성한 판례를 의견서에 인용했다가 재판부가 전산망에서 조회한 결과 해당 판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해당 변호사는 기일 전에 문제를 시인하고 철회했지만, 법원은 공판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추궁했습니다.
일반인이 AI로 고소장을 작성할 경우 이 위험은 더욱 커집니다. 인용된 판례 번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스스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사관이나 검사가 없는 판례를 확인하는 순간, 고소장 전체의 신뢰도가 흔들립니다.

사실관계가 과장되면 무고죄가 된다
AI는 고소인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입력한 내용보다 더 극적으로, 더 범죄처럼 보이도록 각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AI의 문체는 매끄럽고 단정적이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까지 썼나?" 싶을 만큼 강한 표현이 담기기도 합니다.
문제는 고소장에 적힌 사실관계가 객관적 진실에서 벗어날 경우 무고죄(형법 제156조)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고죄는 허위사실임을 확정적으로 인식할 필요 없이, 허위일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신고한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97. 3. 28. 선고 96도2417 판결).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다만 판례는 고소인이 사실관계는 있는 그대로 적었는데 법률적 평가나 죄명 기재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1985. 9. 24. 선고 84도1737 판결). 결국 핵심은 사실관계 자체의 진실성입니다. AI가 표현을 부풀리거나 없는 사실을 추가하지 않도록 초안을 꼼꼼히 대조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법조문 번호가 틀린다
AI는 법령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을 추론해서 텍스트를 생성합니다. 이 때문에 법조문 번호나 판례 번호처럼 정확한 숫자 정보를 다루는 과정에서 오류가 자주 발생합니다.
사기죄를 형법 제347조라고 적어야 할 자리에 다른 조문 번호가 들어가거나, 형사소송법과 형법 조문을 혼용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조문을 그럴듯하게 써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AI가 작성한 고소장 초안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정확하지 않은 법률을 명시하거나 법률가들이 쓰지 않는 어투와 단어들이 쓰일 때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법조문 오류는 고소장 자체의 설득력을 떨어뜨립니다. 수사기관은 고소장을 검토하면서 법리적 타당성도 함께 판단하기 때문에, 틀린 조문이 들어간 고소장은 신뢰도가 낮아지고 수사 착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범죄사실을 AI에 입력할 때의 위험
고소장을 작성하려면 피고소인의 이름, 연락처, 주소, 범죄 내용을 비롯해 피해 상황의 세부 정보를 입력해야 합니다. 이 정보들이 AI 서비스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업용 AI 서비스는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서비스 개선에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감한 개인정보와 범죄 사실이 반복적으로 입력될 경우, 이를 학습한 AI가 다른 사용자와의 대화에서 유사한 정보를 노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소장에 담기는 정보는 당사자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직결됩니다. 사용하는 AI 서비스의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반드시 확인하고, 실명이나 구체적 주소 같은 핵심 식별 정보는 가급적 최소화한 상태에서 초안 작성에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AI는 '초안 도구'로만 써야 한다
그렇다면 AI를 아예 쓰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법원도 2025년 '사법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AI가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임을 인정하면서도, AI는 판단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고소장 작성에서 AI는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첫째, 전체 구조와 흐름을 잡는 용도로 씁니다. 어떤 순서로 사실관계를 기술할지, 어떤 항목을 포함해야 할지 뼈대를 잡는 데는 AI가 유용합니다.
둘째, AI가 제시한 판례·법조문은 반드시 대법원 종합법률정보(glaw.scourt.go.kr)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원문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판례 번호와 선고일이 일치하는지, 판시 내용이 실제로 그러한지 교차 검증 없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사실관계 기술 부분은 AI가 손댄 내용과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사실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해야 합니다. AI가 보태거나 부풀린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삭제해야 합니다.

마치며 — 고소장 한 장이 사건의 방향을 결정한다
고소장은 단순한 민원서류가 아닙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서부터 수사를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최초의 서면입니다. 잘 작성된 고소장은 수사를 빠르게 이끌고, 허술하게 작성된 고소장은 수사를 지체시키거나 방향을 잘못 잡게 만듭니다.
AI 초안을 바탕으로 변호사에게 검토를 의뢰한 후 제출하는 방식은 비용과 효율 면에서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완성된 초안을 가지고 상담에 임하면 변호사도 검토·보완에 집중할 수 있어 시간이 단축됩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AI가 내어준 문서를 그대로 믿고 제출하는 것, 그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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